판결문 15쪽에 적힌 한 문장이 판을 뒤집었다
문장은 짧았다. "It is the user who 'accesses' Amazon's computers, with the help of the Assistant to carry out specific acts on Amazon.com." 아마존의 컴퓨터에 '접속'한 것은 사용자이고, 퍼플렉시티의 어시스턴트는 그 사용자가 아마존닷컴에서 특정 행위를 하도록 도운 도구일 뿐이라는 뜻이야. 2026년 8월 4일, 미국 제9순회항소법원이 내놓은 26-1444번 판결문의 15쪽에 이 문장이 있다.
이 한 문장 때문에 아마존이 다섯 달 동안 손에 쥐고 있던 예비적 금지명령이 통째로 날아갔다. 원심에서 아마존은 이겼다.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의 맥신 M. 체스니(Maxine M. Chesney) 판사가 2026년 3월 아마존 손을 들어주면서, 퍼플렉시티의 AI 브라우저 코멧(Comet)은 아마존 스토어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됐다. 그런데 그 명령이 8월 4일자로 파기(vacate)되고 사건은 1심으로 돌아갔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소장 접수 2025년 11월, 원심 금지명령 2026년 3월, 항소심 구두변론 2026년 6월 11일 시애틀, 판결 2026년 8월 4일. 9개월 만에 미국 연방 항소심 레벨에서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남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는 게 해킹법 위반이냐"는 질문에 첫 답이 나온 거야. 로이터는 이걸 AI 에이전트의 플랫폼 접근을 다룬 첫 연방 항소법원 판결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판결문을 실제로 열어보면 법원 스스로가 지독하게 조심스럽다. 판결문 17쪽에는 이런 문장이 통째로 들어가 있어. "우리는 이 의견이 무엇이 아닌지를 다시 말한다. 우리는 에이전틱 AI를 규율하는 새로운 법체계를 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못을 박는다. "에이전틱 AI에 대한 법적 이해는 AI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틀림없이 달라질 것이다." 승자는 분명한데, 승리의 범위는 일부러 좁게 그어놨다는 얘기야.
그래서 이 기사는 헤드라인보다 각주를 본다. 무엇이 허용됐고, 무엇이 여전히 위험하고, 아마존이 다음에 어떤 카드를 꺼낼 수 있는지. 그리고 이 판결이 왜 퍼플렉시티만의 사건이 아닌지.
링에 오른 두 회사, 그리고 뒤에 줄 선 사람들
먼저 퍼플렉시티. 아라빈드 스리니바스(Aravind Srinivas)가 이끄는 AI 검색 회사이고, 이 사건의 무기는 코멧이다. 판결문 6쪽의 설명이 정확한데, 퍼플렉시티는 사이드킥(Sidekick)이라는 브라우저 회사를 인수한 뒤 코멧을 만들어 2025년에 공개했다. 코멧 자체는 크롬처럼 사용자 기기에서 로컬로 돌아가는 평범한 브라우저다. 차별점은 선택적으로 켤 수 있는 AI 에이전트, 판결문이 계속 "the Assistant"라고 부르는 어시스턴트야. 사용자가 시키면 아마존닷컴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찾고 산다.
기술적 동작 방식이 이 사건의 전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판결문 7쪽. 사용자가 어시스턴트에게 아마존에서 물건을 찾아달라고 하면, 어시스턴트는 브라우저 화면의 스크린샷을 찍어 사용자 컴퓨터에서 퍼플렉시티 서버로 보내고, 퍼플렉시티 서버로부터 아마존닷컴을 어떻게 탐색할지 지시를 받는다. 어시스턴트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동작하지 못한다. 사용자의 지시와 퍼플렉시티 서버의 지시, 둘 다에 의존한다. 이 구조가 나중에 "퍼플렉시티 서버는 아마존 서버와 직접 통신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반대편은 아마존이다. 정확히는 원고 Amazon.com Services, LLC. 아마존의 논리는 자기 스토어가 그냥 웹사이트가 아니라는 데서 출발한다. 고객 계정은 비밀번호로 보호되고, 그 안에는 주문 관리, 저장된 결제수단, 배송지, 개인화 추천, 구매 이력, 반품 처리가 들어 있다. 남의 자동화 도구가 그 계정 안으로 들어와 돌아다니는 걸 그냥 둘 수 없다는 거야. 그리고 아마존도 2025년에 자체 에이전틱 AI 제품을 내놨다는 사실이 판결문 7쪽에 짧게 적혀 있다. 이 한 줄이 나중에 아주 중요해진다.
충돌 지점은 놀랍도록 구체적이다. 판결문 7~8쪽에 따르면, 코멧이 나오기도 전에 아마존은 퍼플렉시티 CEO에게 "당신네 AI 제품은 아마존 스토어에 들어올 수 없다"고 통보했다. 코멧이 출시되고 어시스턴트가 실제로 스토어에 접근하자 아마존은 다시 통보했다. 그리고 분쟁의 핵심으로 남은 게 유저 에이전트 문자열(user-agent string)이야. 브라우저가 서버에 자기 정체를 알리는 그 문자열 말이다. 퍼플렉시티는 "이 사용자가 AI 에이전트를 켰다"는 걸 알리는 유저 에이전트 문자열을 쓰지 않기로 했고, 그게 있었다면 아마존은 어시스턴트를 골라내 차단할 수 있었다. 판결문 각주 1은 아마존이 처음에 어시스턴트를 식별해 차단하는 데 성공한 뒤 퍼플렉시티가 문자열을 고의로 바꿨는지를 두고 양측이 다툰다고 적어놨다. 즉 이 다툼은 아직 사실관계로 남아 있다.
법정 밖 배경도 알아둘 만해. 이 유저 에이전트 이슈는 퍼플렉시티에게 처음이 아니다. 2025년 8월 4일 클라우드플레어는 퍼플렉시티가 로봇 배제 지시를 회피하려고 신고되지 않은 스텔스 크롤러를 쓰고 있다고 공개 저격했다. 클라우드플레어 주장의 핵심은 퍼플렉시티가 차단당하면 맥OS의 크롬을 흉내 낸 일반 유저 에이전트로 갈아타고 신고되지 않은 IP 대역을 돌려 썼다는 것, 그리고 그 규모가 수만 개 도메인에 하루 수백만 요청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클라우드플레어는 퍼플렉시티를 검증된 봇(Verified Bots) 목록에서 내렸다. 아마존이 "이 회사는 정체를 숨긴다"고 주장할 때 배경으로 깔린 서사가 이거야. 퍼플렉시티는 2025년 11월 4일 「Bullying is Not Innovation」이라는 블로그로 아마존의 제소에 맞받았다.
마지막으로 재판부. 밀란 D. 스미스 주니어(Milan D. Smith, Jr.)와 에릭 C. 텅(Eric C. Tung) 순회판사, 그리고 애리조나 연방지법에서 지정 배석한 존 찰스 하인더에이커(John Charles Hinderaker) 판사. 집필은 스미스 판사다. 변호인 라인업도 화려한데, 아마존 측은 휴스턴 헤니건(Hueston Hennigan)의 헤이건 스코튼이 변론했고 퍼플렉시티 측은 퀸 이매뉴얼(Quinn Emanuel)의 크리스토퍼 미셸이 나섰다. 그리고 법정의견서(amicus brief)를 낸 진영 구성이 이 사건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퍼플렉시티 쪽 논리를 뒷받침한 곳은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컬럼비아대 나이트 수정헌법1조연구소, 전자프런티어재단(EFF), 모질라, EleutherAI 같은 디지털 권리·오픈웹 진영이었다. 반대편엔 전미소매연맹(NRF), News/Media Alliance, 소프트웨어정보산업협회(SIIA), 그리고 항공사 단체 Airlines for America가 섰다. 콘텐츠와 상거래를 소유한 쪽 대 웹의 개방성을 지키려는 쪽. 이 대립 구도가 앞으로 5년간 반복될 거야.
법원이 실제로 판단한 것과, 일부러 판단하지 않은 것
핵심 쟁점은 딱 하나였다. CFAA 18 U.S.C. § 1030(a)(2)의 다섯 가지 요건 중 첫 번째, "고의로 컴퓨터에 접속했는가(intentionally accessed a computer)". 나머지 요건 — 권한 없이 또는 권한을 초과했는지, 정보를 얻었는지, 보호되는 컴퓨터인지, 1년간 5,000달러 이상의 손실이 있었는지 — 은 법원이 아예 다루지 않았다. 판결문 각주 4가 그 이유를 밝힌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 불필요하다는 것. 첫 관문에서 아마존이 걸린 거야.
원심은 반대로 봤다. 체스니 판사의 짧은 서면 명령은 이렇게 적었다. "아마존은 퍼플렉시티가 코멧 브라우저를 통해 아마존 사용자의 허락은 받았지만 아마존의 허가 없이 사용자의 비밀번호 보호 계정에 접속하고, 그로써 사용자의 사적인 아마존 계정 정보를 얻어 그 정보를 퍼플렉시티 서버로 전송한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출했다." 손실 요건도 인정했다. 아마존 직원들이 코멧의 접근을 차단하는 도구를 개발하고 이후의 무단 접근을 탐지하는 데 들인 시간만으로 5,000달러를 훌쩍 넘는다는 것.
항소심은 "접속" 분석에서 원심이 틀렸다고 봤다. 논거는 세 겹이다.
첫째, 사실관계상 퍼플렉시티 서버는 아마존 서버와 직접 통신하지 않는다. 판결문 14쪽에서 법원은 EFF 측 법정의견서의 설명을 그대로 길게 인용한다. 사용자가 아마존 페이지를 방문하면 브라우저가 아마존 서버에 페이지를 요청해 사용자에게 보여준다. 어시스턴트를 켜면 어시스턴트는 이미 사용자 컴퓨터에 표시된 페이지의 내용을 분석한다. 필요하면 사용자의 지시와 페이지 정보를 퍼플렉시티의 AI 서버로 보낸다. 퍼플렉시티 서버는 아마존 서버에 직접 접속하는 일이 결코 없다. 법원은 "이 설명이 시스템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표현한다"고 적었다.
둘째, 조문의 문언이다. § 1030(a)(2)는 "누구든지(whoever) 고의로 접속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법원은 이 "whoever"가 사람을 전제한다고 봤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어시스턴트가 현재 아무리 발전했더라도, 그것은 법문상 사람이 아니라 도구다." 그러면 남는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퍼플렉시티가 도구(어시스턴트)를 사용해 아마존 컴퓨터에 '접속'했는가. 이 기록상으로는 아니다. 접속한 건 사용자이고, 어시스턴트는 그 사용자를 도왔을 뿐이다. 여기에 연방대법원의 Van Buren 판결(2021)이 정의한 "접속 = 컴퓨터 시스템 자체 또는 파일·폴더·데이터베이스 같은 일부에 진입하는 행위"라는 기준이 적용됐다. 퍼플렉시티가 스크린샷을 받고 어시스턴트에 지시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아마존 서버에 '진입(gain entry)'했다고 볼 수 없다는 거야.
셋째, 관용의 원칙(rule of lenity)이다. CFAA는 본래 형사법이고, 조문 해석은 민사·형사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모호함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해석해야 한다. 여기서 법원이 던진 경고가 이 판결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이다. 아마존의 해석을 받아들이면, 어시스턴트를 켠 사용자 본인이 공모나 방조 이론으로 형사책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 판결문의 표현으로는 "의회가 코멧 브라우저와 어시스턴트를 써서 아마존닷컴에 접속한 개별 사용자를 CFAA 형사책임에 노출시켰을 가능성은 낮다."
캘리포니아 CDAFA도 같이 무너졌다. 아마존은 CDAFA의 '접속' 정의가 CFAA보다 넓고 허가 요건도 단순하며 정보 '취득' 요건도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그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결론은 같다고 했다. CDAFA도 무단 접속을 야기한 "person"에게만 적용되고, 초점은 여전히 접속하거나 접속을 야기한 사람에게 맞춰져 있으니까. 두 청구는 같이 서고 같이 넘어진다.
형평 요소 판단도 흥미로워. 항소심은 원심이 형평 요소를 아예 무시한 건 아니라고 인정했다. 다만 결론이 틀렸다고 봤다. 회복 불가능한 손해에 대해 아마존이 낸 증거는 약했다. 어시스턴트가 "고객에게 최적의 가격, 배송 방법, 상품 추천을 고르지 못할 수 있다"는 진술서였는데, 법원은 이걸 쇼핑 경험의 저하라는 추상적 주장으로 봤다. 세관에 물건이 묶여 이미 약속한 고객에게 못 보내는 상황(Stuhlbarg 판결)과는 결이 다르다는 거야. 게다가 사용자가 스스로 어시스턴트를 쓰기로 선택한 이상, 경험 저하의 책임을 아마존에게 돌릴지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보안 리스크 주장은 더 세게 깎였다. 아마존은 "다수의 보안 연구자가 퍼플렉시티의 보안 위험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퍼플렉시티는 아마존 측 전문가 본인이 그 위험을 완전히 재현하지 못했다고 진술했고 퍼플렉시티가 이미 문제를 처리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아마존 전문가 진술서가 든 사이버 리스크 사례 중 쇼핑 사이트가 관련된 건 하나뿐이었고, 그 하나도 아마존닷컴 사례가 아니었다. 결론은 "제출 증거가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 반박됐다"는 것.
| 항목 | 내용 |
|---|---|
| 사건 | Amazon.com Services, LLC v. Perplexity AI, Inc., 제9순회항소법원 No. 26-1444 |
| 원심 |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 3:25-cv-09514-MMC, 맥신 M. 체스니 판사 |
| 재판부 | 밀란 D. 스미스 주니어(집필), 에릭 C. 텅, 존 C. 하인더에이커(애리조나 지법 지정 배석) |
| 구두변론 / 선고 | 2026년 6월 11일 시애틀 / 2026년 8월 4일 |
| 쟁점 조항 | CFAA 18 U.S.C. § 1030(a)(2), 캘리포니아 CDAFA(Penal Code § 502(c)(7)) |
| 핵심 판시 | 아마존 컴퓨터에 '접속'한 주체는 사용자이지 퍼플렉시티가 아님 |
| 논거 1 | 퍼플렉시티 서버가 아마존 서버와 직접 통신하지 않음(스크린샷 경유) |
| 논거 2 | § 1030(a)(2)의 "whoever"는 사람 전제 — 어시스턴트는 "도구지 사람이 아님" |
| 논거 3 | 관용의 원칙 — 확대 해석 시 사용자 본인이 형사책임에 노출될 수 있음 |
| 형평 요소 | 회복 불가능한 손해·형평 균형·공익 모두 퍼플렉시티에 유리 |
| 처분 | 예비적 금지명령 파기(vacate) 및 환송(remand) |
| 살아 있는 청구 | 계약 위반, 이용약관 위반, 불법행위(tort) 계열 — 판결문이 명시적으로 유보 |
| 판단하지 않은 것 | 권한·손실 요건, 다른 기록·다른 사실관계에서의 결론, 에이전틱 AI 일반 법리 |
표에서 가장 중요한 줄은 마지막 두 줄이다. 판결문 각주 5는 아예 이렇게 못을 박았다. "이 결론은 아마존이 사용자에 대한 사적 이용약관을 통해 아마존닷컴 접근을 규율할 능력을 훼손하지 않는다. 이 기록상 아마존은 CFAA와 CDAFA를 원용해 접근을 규율하려는 시도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낮을 뿐이다." 즉 법원은 아마존에게 "해킹법 말고 계약법으로 가라"고 길을 알려준 셈이야.
이 판결로 누가 뭘 챙겼나
가장 크게 챙긴 쪽은 당연히 퍼플렉시티다. 다만 챙긴 게 '승소'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점이 중요해. 예비적 금지명령은 본안 판단이 아니다. 다섯 달 동안 코멧의 대표 기능인 아마존 쇼핑이 막혀 있었고, 그건 AI 브라우저를 파는 회사에게 제품 서사의 절반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판결문이 형평 균형을 논하며 "큰돈을 들여 개발한 제품을 온전히 운영하지 못하게 하는 불필요한 부담"이라고 표현한 게 정확하다. 이제 제품은 돌아왔고, 본안 소송이 몇 년 갈 동안 코멧은 계속 팔린다.
두 번째 수혜자는 퍼플렉시티가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던 개발자 전체다. EFF가 이 판결에 반응하며 강조한 게 그거야. CFAA는 오랫동안 큰 회사가 작은 회사와 개발자를 압박하는 데 오용돼왔고, 이번 판결은 "새로운 방식으로 웹사이트에 접근하게 해주는 도구를 만드는 것 자체는 해킹이 아니다"라는 항소심 레벨의 근거를 처음 만들어줬다는 것. 브라우저 확장, 접근성 도구, 가격 비교 툴, 스크린 리더처럼 사용자 기기에서 사용자 대신 웹을 다루는 소프트웨어가 전부 같은 논리의 우산 아래 들어간다.
세 번째는 사용자 본인이다. 이건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형사책임 문제야. 아마존의 해석을 법원이 받아들였다면, 그 논리의 끝에는 "AI 에이전트를 켜고 쇼핑한 사용자가 무단 접속의 공모자"라는 결론이 앉아 있었다. 법원이 이 지점을 명시적으로 경고했다는 건, 앞으로 비슷한 사건에서 원고 측이 CFAA를 들고 나올 때마다 넘어야 할 벽이 하나 생겼다는 뜻이다.
반대로 아마존이 잃은 건 뭘까. 표면적으로는 금지명령 하나지만, 실질적으로는 협상 레버리지다. 금지명령이 살아 있는 동안 아마존은 "우리 스토어에 들어오려면 우리 조건을 받아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지렛대가 없다. 다만 아마존은 판결 직후 "예비적 금지명령에 관한 오늘 결정에 정중히 동의하지 않는다"며 "우리 사건에 여전히 자신이 있고 다음 단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원합의체 재심리(en banc) 신청이나 연방대법원 상고, 또는 1심에서 청구원인을 갈아끼우는 선택지가 남아 있다.
그리고 아무도 크게 얻지 못한 쪽이 있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나머지 전부다. 이번 판결은 "봇을 막고 싶으면 해킹법 대신 이용약관과 기술적 조치를 쓰라"는 방향을 가리키는데, 문제는 그게 훨씬 손이 많이 가고 훨씬 약하다는 거야. 이용약관 위반은 손해 입증이 어렵고, 기술적 차단은 유저 에이전트 문자열을 쓰지 않는 상대에게는 잘 듣지 않는다. NRF와 News/Media Alliance, 항공사 단체가 법정의견서를 낸 이유가 여기 있다. 이들에게 이 판결은 남의 회사 사건이 아니었어.
hiQ, 파워벤처스, 반뷰런 — 이 법이 걸어온 길
CFAA는 1984년 위조접속장치·컴퓨터사기남용법의 일부로 태어났다. 처음엔 국가안보 정보나 금융 데이터가 든 컴퓨터, 정부가 운영하는 컴퓨터만 대상이었다. 1996년에 "보호되는 컴퓨터(protected computer)"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사실상 인터넷에 연결된 거의 모든 컴퓨터가 포함됐고, 그때부터 이 법은 원래 의도와 다른 곳에 쓰이기 시작했다. 제9순회법원이 hiQ Labs v. LinkedIn(2022)에서 정리한 표현이 그거야. 의회의 목적은 "타인의 컴퓨터에 대한 고의적 침입, 구체적으로는 컴퓨터 해킹을 막는 것"이었다.
실패 사례부터 보자. Facebook v. Power Ventures(제9순회, 2016)다. 파워벤처스는 여러 소셜네트워크의 연락처를 한 페이지에 모아 보여주는 서비스였는데, 프로모션 캠페인에서 사용자 친구들에게 페이스북 시스템 내부 메시지를 보내게 했다. 페이스북이 중단요구서(cease-and-desist)를 보냈는데도 계속하자 법원은 CFAA 위반을 인정했다. 아마존이 이번에 기댄 게 정확히 이 판례야. "사용자가 시킨 사소한 작업이라도 그 결과는 회사에 귀속된다"는 논리.
그런데 이번 판결은 파워벤처스를 정면으로 뒤집지 않고 옆으로 비껴갔다. 판결문 12~13쪽의 논리가 정교하다. 파워벤처스 판결에서 법원은 파워가 페이스북에 '접속'했다는 걸 논의 없이 전제했고, 분석의 대부분은 접속이 아니라 권한(authorization)에 쓰였다는 것. 그리고 그 판결의 서술 자체가 파워의 서버가 페이스북 서버에 접속했음을 함의하고 있었다는 것. 반면 이번 사건에서는 퍼플렉시티 서버가 아마존 서버에 닿지 않는다. 같은 조항을 다투지만 사실관계의 배관이 다르다는 게 결론이야.
퍼플렉시티가 기댄 판례는 Meta v. BrandTotal(캘리포니아 북부, 2022)이었다. 브랜드토탈의 UpVoice 확장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페이스북을 평소처럼 쓰면서 받은 데이터를 수동적으로 기록해 전송했다. 그 사건의 법원은 "메타가 개별 사용자에게 이미 보낸 데이터에 접근한 것일 뿐, 메타 서버에 능동적으로 접속하거나 통신한 게 아니다"라고 봤고 관용의 원칙에 기대 CFAA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이 판례도 완벽한 유비는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어시스턴트는 수동적 데이터 수집 이상의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명시했거든. 즉 법원은 양쪽 판례 모두에서 거리를 두고, 조문 문언과 관용의 원칙으로 직접 내려갔다.
성공 사례로 읽을 만한 건 hiQ Labs v. LinkedIn이다. hiQ는 링크드인의 공개 프로필을 스크래핑해 인사 분석 서비스를 만들었고, 링크드인이 CFAA를 들고 막으려 하자 제9순회법원은 공개된 데이터에는 "권한 없는 접속"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봤다. 여기서 나온 교훈은 이번 판결과 정확히 같은 방향이다. CFAA를 "확장된 부정취득 방지법"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 이 표현은 United States v. Nosal(제9순회 전원합의체, 2012)에서 온 건데, 이번 판결문 10쪽에도 그대로 인용됐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의 Van Buren v. United States(2021)가 이 흐름의 정점이다. 대법원은 "접속"이란 컴퓨터 시스템 자체나 파일·폴더·데이터베이스 같은 특정 부분에 진입하는 행위라고 정의하면서 CFAA의 확장 해석에 제동을 걸었다. 이번 판결이 "gain entry"라는 단어에 계속 매달린 이유가 그거야. 요약하면 지난 15년간 CFAA 확대 해석을 시도한 원고들은 대체로 졌다. 아마존은 그 흐름을 AI 에이전트라는 새 사실관계로 되돌려보려 했고, 다시 졌다.
아마존의 다음 수, 그리고 다른 플랫폼들의 계산
아마존이 꺼낼 수 있는 첫 번째 카드는 판결문이 친절하게 남겨준 길이다. 계약. 판결문 17쪽은 "다른 맥락에서, 불법행위 청구를 포함해 퍼플렉시티가 어시스턴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고, 각주 5는 이용약관을 통한 규율 능력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래서 앞으로 아마존이 갈 길은 뻔하다. 이용약관에 "제3자 자동화 에이전트로 계정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더 날카롭게 다듬고, 계약 위반과 계약관계 방해(tortious interference) 같은 이론으로 청구원인을 재구성하는 것. 문제는 이 경로가 훨씬 느리고 손해 입증이 까다롭다는 점이야. 그리고 사용자에게 계약 위반 책임을 묻는 그림은 고객 관계상 최악이다.
두 번째 카드는 기술이다. 이번 사건 전체가 유저 에이전트 문자열에서 시작했다는 걸 기억하자. 아마존이 원한 건 금지가 아니라 식별이었다. "AI 에이전트가 켜졌다"는 신호만 있으면 차단이든 요금 부과든 파트너십이든 뭐든 설계할 수 있으니까. 지금 업계에서 논의되는 방향도 그쪽이다. 클라우드플레어가 밀고 있는 Web Bot Auth 같은 암호학적 봇 서명 방식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정직하게 신원을 밝히는 에이전트만 통과"라는 룰이 계약이 아니라 프로토콜 레벨에서 강제된다. 이번 판결은 법으로 막는 길을 좁혔고, 그만큼 기술 표준의 몸값을 올렸어.
세 번째 카드가 가장 흥미롭다. 아마존은 이미 정반대편에서 같은 게임을 하고 있거든. 2026년 5월 아마존은 루퍼스(Rufus)를 접고 Alexa for Shopping을 내놨다. 이 에이전트의 기능 목록에 'Buy for Me'가 있는데, 아마존 스토어에 없는 브랜드 상품을 다른 소매업체 웹사이트에서 아마존이 고객 대신 사주는 기능이다. 저장된 결제수단과 배송지를 써서. 목표 가격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구매하는 오토 바이, 반복 구매를 예약하는 Scheduled Actions도 함께 붙었다. 여기에 더해 아마존은 이 기술을 AWS를 통해 다른 소매업체에게 파는 상품으로도 만들었다. 정리하면 아마존은 "남의 에이전트가 우리 사이트에 들어오는 것"은 막으면서 "우리 에이전트가 남의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은 제품으로 팔고 있다. 2026년 1월에 일부 온라인 판매자들이 "우리는 이 프로그램에 동의한 적 없다"며 반발한 것도 같은 구조다. 그러니까 이번 판결의 논리 — 접속한 건 도구를 켠 사용자다 — 는 아마존 자신의 Buy for Me를 방어하는 데도 그대로 쓸 수 있는 논리야. 아마존이 상고를 고민할 때 가장 곤란한 지점이 여기다.
네 번째로 봐야 할 건 다른 플랫폼들의 계산이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2025년 10월 31일 실적 발표에서 서드파티 에이전트에 대해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파트너십을 맺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결국 협력할 방법을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검색엔진이 초기에 그랬듯 지금 AI 에이전트가 아마존에 보내는 트래픽은 미미하지만, 방향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소매업체 입장에서 진짜 두려운 건 에이전트가 들어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에이전트가 가격과 배송만 비교하고 브랜드와 광고 지면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마존 매출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에이전트 트래픽은 곧 광고 노출이 사라진 트래픽이거든. 이번 판결은 그 문을 법으로 잠글 수 없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다섯째, 그래서 다음 전선은 봇 차단 기술과 요금 부과다. 판결이 CFAA 경로를 좁히면 플랫폼은 계약과 기술로 이동하고, 그러면 에이전트 회사들은 다시 우회를 시도하거나 정식 계약을 맺는다. 클라우드플레어가 2025년부터 밀어온 크롤 유료화 모델, 신원 인증된 에이전트에게만 접근을 허용하는 접근 제어, 소매업체와 에이전트 사업자 간 수수료 계약 같은 것들이 앞으로 몇 년의 실제 싸움터가 될 거야. 법정에서 결판나는 게 아니라 프로토콜과 계약서에서 결판난다는 얘기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개발자 입장에서 이 판결의 실용적 요지는 하나로 압축된다. 아키텍처가 곧 법적 리스크다. 퍼플렉시티가 이긴 결정적 이유는 논리가 우아해서가 아니라, 자기 서버가 아마존 서버에 직접 닿지 않는 구조였기 때문이야. 사용자 기기의 브라우저가 요청을 보내고, 에이전트는 화면에 이미 그려진 내용을 분석하고, 서버는 지시만 돌려준다. 만약 같은 기능을 서버 사이드 헤드리스 브라우저나 서버-투-서버 API 호출로 구현했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판결문 15쪽이 "다른 기록이나 새로운 사실관계에서 퍼플렉시티가 어시스턴트를 통제해 아마존 서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열어뒀거든. 에이전트를 설계 중이라면 실행 위치를 클라이언트에 두는 선택이 성능 문제가 아니라 관할과 책임의 문제라는 걸 이제 알아야 한다.
기업 의사결정자 입장에서는 반대 방향의 숙제가 생겼다. 우리 사이트에 남의 에이전트가 들어오는 걸 통제하고 싶다면, 법무팀에게 "해킹법으로 막아달라"고 하는 건 이제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최소한 제9순회 관할, 즉 캘리포니아·워싱턴을 포함한 미국 서부에서는 그렇다. 실무적으로 지금 해야 할 건 세 가지야. 첫째, 이용약관에 자동화 에이전트 접근 조항이 명시돼 있는지, 그 조항이 사용자 계정 단위로 강제 가능한지 검토할 것. 둘째, 에이전트를 식별할 기술적 수단 — 유저 에이전트 신고, 봇 서명, 전용 API — 을 지금 설계할 것. 셋째, 차단이 최선인지 다시 계산할 것. 에이전트 트래픽이 실제로 전환되는 채널이라면, 막는 것보다 조건부로 열어주고 데이터를 확보하는 쪽이 나을 수 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리스크 하나가 크게 줄었다. 지난 1년간 AI 브라우저·에이전트 스타트업을 볼 때 가장 큰 미지수는 "플랫폼이 소송 한 방으로 이 제품을 꺼버릴 수 있느냐"였다. 이번 판결은 적어도 CFAA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 — 형사법이라 억지력이 크고, 예비적 금지명령을 받아내기 쉬운 — 에 대해 답을 줬다. 다만 두 가지는 짚어두자. 하나, 이건 예비적 금지명령 단계의 판단이고 본안은 남아 있다. 둘, 계약과 불법행위 경로는 그대로 살아 있고 그쪽 리스크는 이 판결로 조금도 줄지 않았다. 에이전틱 커머스 스타트업의 실사 항목에 "대상 플랫폼의 이용약관 위반 여부"를 넣어야 하는 이유야.
일반 사용자한테 직접 오는 변화는 당장은 하나다. 코멧으로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는 게 다시 된다. 그리고 조금 더 길게 보면, 앞으로 몇 년간 "내가 켠 AI가 내 계정 안에서 뭘 할 수 있는가"의 경계가 이 판결의 논리 위에서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어시스턴트를 사용자의 도구로 봤고, 그건 뒤집어 말하면 그 도구가 저지른 일의 상당 부분이 사용자에게 귀속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에이전트가 엉뚱한 물건을 사거나 잘못된 배송지를 넣었을 때 누가 책임지느냐는 이번 판결이 다루지 않았다. 그건 다음 소송의 주제다.
정책·컴플라이언스 담당자에게도 한 줄. 이 판결의 진짜 의미는 "AI 에이전트가 합법이다"가 아니라 "1984년에 만든 해킹 방지법으로 2026년의 에이전트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확인이야. 법원이 스스로 새 법체계를 세우지 않겠다고 두 번이나 못 박은 건 사실상 입법부에 넘긴 신호에 가깝다. 에이전트의 신원 표시 의무, 계정 위임의 형식, 자동 거래의 책임 배분 같은 문제는 판례가 아니라 규칙으로 정리돼야 하는 종류의 문제거든.
🥄 남은 궁금증 세 가지
— 그래서 나랑 무슨 상관이야? 당장은 코멧 같은 AI 브라우저로 아마존 쇼핑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정도야. 다만 회사에서 사용자를 대신해 외부 사이트를 다루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져. 그 코드가 사용자 기기에서 도느냐 너희 서버에서 도느냐가 이제 법적 리스크의 갈림길이거든.
— 이게 왜 지금 나온 거야? 에이전트가 데모에서 결제 단계로 내려왔기 때문이야. 브라우저가 페이지를 읽어주는 수준이었을 땐 아무도 소송을 안 걸었는데, 비밀번호로 보호된 계정에 들어가 저장된 카드로 결제까지 하기 시작하니 플랫폼이 반응한 거지. 아마존이 코멧 출시 전부터 접근 금지를 통보했고 제소가 2025년 11월이었던 걸 보면, 이 충돌은 기능이 완성되는 속도를 그대로 따라왔다.
— 그럼 이제 아마존이 진 거야? 예비적 금지명령 단계에서 졌을 뿐이고 본안은 그대로 1심에 남아 있어. 게다가 법원이 계약 위반과 불법행위 청구는 손대지 않았다고 명시했으니, 아마존이 청구원인을 갈아끼워 다시 올 여지가 크다. 전원합의체 재심리나 상고 가능성도 남아 있고. 판결문 스스로 "에이전틱 AI에 대한 법적 이해는 틀림없이 달라질 것"이라고 썼으니, 이걸로 판이 끝났다고 단정하긴 일러.
참고 자료
- 제9순회항소법원 — Amazon.com Services, LLC v. Perplexity AI, Inc. (No. 26-1444) 판결문 전문
- Cooley — Ninth Circuit Rules on AI Agent 'Access' to Third-Party Websites Under CFAA
- 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 Appeals Court Agrees with EFF that Building a Web Browser Doesn't Violate the CFAA
- Courthouse News Service — Ninth Circuit lifts block on AI-powered shopping assistant
- PYMNTS — Ninth Circuit Narrows CFAA Reach in Perplexity Agentic Commerce Ruling
- Engadget — Perplexity has successfully overturned Amazon's injunction on its AI shopping bot
- Perplexity — Bullying is Not Innovation (2025년 11월 4일)
- Cloudflare — Perplexity is using stealth, undeclared crawlers to evade website no-crawl directives
- Amazon — Meet Alexa for Shopping, your personalized, agentic AI assistant on Amazon
- Amazon — AWS Agentic Shopping Assistant: Amazon's AI shopping tech, now for any retailer
- Modern Retail — Amazon CEO expects to 'find ways' to partner with third-party AI shopping agents in the future
- CourtListener — Amazon.com Services LLC v. Perplexity AI, Inc. (3:25-cv-09514) 도켓
- Medianama — What the Perplexity vs Amazon ruling means for AI agents acting on users' behalf
수치는 발표 시점 기준이라 바뀔 수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