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 인증이 아니라 판로가 열린 거야

8월 18일 국산 AI 반도체 기업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우수연구개발 혁신제품으로 지정됐다고 밝혔어.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딥엑스 세 곳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어. 지정서 수여식은 8월 13일 리벨리온 본사에서 열렸고, '25년~'26년 상반기 지정분을 함께 수여하는 자리였어.

이 소식을 "국산 칩이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로 읽으면 절반만 본 거야. 혁신제품 지정은 기술 인증 제도가 아니야. 조달 제도야.

지정되면 뭐가 달라지냐면 이래.

  • 공공기관이 경쟁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살 수 있어
  • 조달에 걸리는 기간이 60일에서 10일 이하로 줄어
  • 구매 담당 공무원의 손실 책임이 면제
  • 기본 3년간 유효하고 최대 6년까지 연장 가능해

세 번째 항목이 실무에서는 가장 크게 작동해. 공공기관 담당자가 검증되지 않은 국산 제품을 샀다가 문제가 생기면 개인이 책임을 져야 했어. 그래서 다들 안전한 선택, 즉 이미 검증된 해외 제품을 골랐지. 이 책임을 면제해 주면 담당자 입장에서 국산을 고르는 비용이 사라져.

세 회사가 어떤 곳인지 짧게 짚고 가자. 리벨리온은 2020년 설립된 AI 반도체 설계 회사로, 데이터센터 추론용 NPU를 만들어. SK텔레콤 계열 사피온과 합병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AI 칩 기업이 됐어. 퓨리오사AI는 2017년 창업했고, 1세대 워보이에 이어 2세대 레니게이드로 데이터센터 추론 시장을 공략 중이야. 딥엑스는 엣지 쪽에 집중해 온 회사로, 서버가 아니라 현장 기기에 들어가는 저전력 추론 칩이 주력이야.

어떤 제품이 지정됐는지

리벨리온은 서버형 NPU 아톰맥스(ATOM-Max) 카드아톰맥스 서버가 지정됐어.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추론 가속 카드와 그 카드를 탑재한 완제품 서버 두 가지야.

딥엑스DX-M1·DX-H1 시리즈가 지정됐어. 이쪽은 성격이 달라.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엣지, 즉 현장 기기에 들어가는 AI 추론 모듈이야. CCTV, 산업용 장비, 로봇 같은 곳에 붙어.

퓨리오사AI도 함께 지정됐어. 퓨리오사AI는 2세대 추론 칩 레니게이드(RNGD) 양산에 들어간 상태야.

세 회사가 서로 다른 층위를 맡고 있다는 게 이번 지정의 구성이야. 리벨리온은 서버, 딥엑스는 엣지, 퓨리오사AI는 데이터센터 추론. 공공 부문이 AI 인프라를 국산으로 채우려 할 때 필요한 층이 대체로 다 있는 셈이야.

NPU가 뭔지도 한 줄 짚자면, 신경망 연산에 특화된 프로세서야. GPU는 원래 그래픽 연산용으로 만들어졌다가 AI에 전용된 범용 병렬 프로세서인데, NPU는 처음부터 행렬 곱과 활성화 함수 같은 신경망 연산만 잘하도록 설계돼. 그래서 같은 작업에서 전력 효율이 높고 단가가 낮을 수 있어. 대신 유연성이 떨어져서, 새로운 형태의 모델이 나오면 대응이 늦어지는 게 약점이야.

이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단계 주체 내용
추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 R&D 성과물 중 우수 제품 추천
심의·결정 기획재정부 조달정책심의위원회 혁신제품 최종 지정
조달 조달청 공공기관 수의계약 경로 제공
유효 기간 기본 3년, 최대 6년

이 제도의 논리는 이래. 국가 R&D 자금으로 개발된 제품이 사업화 단계에서 첫 레퍼런스를 못 구해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어.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아무도 처음 사 주지 않아서야. 공공기관이 첫 고객이 되어 주면 그 레퍼런스로 민간 시장에 들어갈 수 있어.

AI 반도체는 이 문제가 특히 심한 분야야. GPU 시장은 엔비디아와 CUDA 생태계가 사실상 표준이고, 새 아키텍처를 도입하려면 소프트웨어 포팅과 운영 노하우를 처음부터 쌓아야 해. 성능이 비슷해도 전환 비용 때문에 안 사. 이 벽을 정책으로 뚫어 주겠다는 게 이번 조치의 목적이야.

숫자로 보면 이 정책의 한계도 같이 보여. 국내 공공기관의 AI 인프라 예산은 조 단위가 아니라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 규모야. 반면 국내 대기업 한 곳이 한 해에 사는 GPU 규모가 그보다 큰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공공 조달만으로 이 회사들이 자립하는 시나리오는 애초에 없어. 이 제도의 값어치는 매출이 아니라 레퍼런스에 있고, 그 레퍼런스를 민간과 해외로 얼마나 빨리 옮기느냐가 관건이야.

이 제도가 왜 지금 나왔는지도 배경이 있어. 정부는 올해 초부터 국산 AI 반도체의 공공시장 진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해 왔어.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 같은 대형 사업이 잡히면서, 그 예산이 전부 해외 GPU 구매로 빠져나가는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거든. 혁신제품 지정은 그 논의의 구체적인 실행 수단 중 하나야.

각자가 챙기는 것

리벨리온이 챙기는 건 레퍼런스 확장이야. 리벨리온은 이미 경남도청과 울산광역시에 제품을 납품했고, 대국민 AI 서비스 상용화와 공공 AI CCTV 사업 경험도 있어.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그간 대국민 AI 서비스 상용화와 공공 AI CCTV 납품으로 기술력을 증명한 데 이어, 이번 지정으로 국산 NPU 공공 확산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어. 개별 계약을 하나씩 따내던 방식에서 제도적 경로가 생긴 차이야.

딥엑스가 챙기는 건 국내 기반이야. 딥엑스는 이미 해외에서 1,300만 달러 규모 수주를 확보했고, 공군 기지 AI 경계감시체계에 NPU를 공급하고 있어.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이번 혁신제품 지정을 계기로 국내 공공 인프라에 국산 AI 반도체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어. 해외 매출이 먼저 나온 회사가 국내 공공 시장을 뒤늦게 여는 순서인데, 국내 레퍼런스는 다른 국가의 공공 조달에 들어갈 때 다시 근거가 돼.

퓨리오사AI가 챙기는 건 양산 시점의 수요야. 2세대 레니게이드 양산에 들어간 시점에 공공 조달 경로가 열린 건 타이밍이 좋아. 반도체는 초기 물량이 확보돼야 단가가 내려가고, 단가가 내려가야 민간 고객을 설득할 수 있어.

공공기관이 챙기는 건 속도와 면책이야. 60일이 10일이 되는 건 예산 집행 일정에서 큰 차이야. 그리고 손실 책임 면제는 담당자가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야.

국내 서버·SI 업체가 챙기는 건 새 조합이야. 국산 NPU를 얹은 서버를 공공기관에 납품하려면 하드웨어 통합, 운영체제 대응, 모니터링 도구 연동 같은 작업이 필요해. 이 부분은 칩 회사가 아니라 시스템 통합 업체의 영역이야. 공공 수요가 늘면 이쪽에도 일감이 생겨. 리벨리온이 카드와 서버를 함께 지정받은 건 이 단계를 자기가 흡수하겠다는 신호로도 읽혀.

정부가 챙기는 건 GPU 의존도 완화야. AI 인프라 구축에 들어가는 예산의 상당 부분이 해외 GPU 구매로 나가는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야. 공공 수요를 국내 기업에 몰아 줘서 초기 시장을 만들어 주는, 산업 정책의 전형적인 도구야.

이런 정책이 앞서 어떻게 됐나

중국의 국산 칩 조달 정책이 가장 가까운 참고 사례야. 중국은 공공 부문과 국유기업에 국산 반도체 사용을 사실상 의무화하면서 화웨이 어센드, 캠브리콘 같은 기업의 초기 시장을 만들었어. 결과적으로 이 회사들은 자체 소프트웨어 스택을 키울 시간과 자금을 얻었어. 다만 그 과정에서 성능 대비 비효율을 감수해야 했고, 국제 시장 경쟁력은 별개 문제로 남았어.

한국의 과거 국산 소프트웨어 조달 정책은 엇갈린 결과를 냈어. 공공 조달에서 국산 소프트웨어에 가점을 주는 제도가 오래 운영됐는데, 일부 분야에서는 국내 기업이 자리를 잡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공공에서만 팔리는 제품"이 되는 부작용이 나왔어. 공공 시장에 최적화된 나머지 민간 경쟁력을 잃는 패턴이야. 지금 NPU 3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기도 해.

미국의 CHIPS법과 국방 조달은 규모가 다른 사례야. 반도체 제조와 국방 수요를 묶어 초기 시장을 만드는 방식인데, 핵심은 조달 물량 자체가 컸다는 거야. 한국 공공 시장은 절대 규모가 작아서 같은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레퍼런스로서의 가치가 물량으로서의 가치보다 클 수밖에 없어.

일본의 라피더스는 아직 진행형이야. 정부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해 첨단 공정을 만들려는 시도인데, 수요처 확보가 계속 과제로 지적돼. 만드는 것보다 파는 게 어렵다는 점은 어디나 같아.

네 사례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교훈은 이거야. 정부 조달은 시작 자금을 대 줄 수는 있어도 제품 경쟁력을 만들어 주지는 못해. 보호가 길어지면 오히려 경쟁력이 자라지 않는 역효과가 나. 그래서 지정 기간을 3년으로 두고 최대 6년까지만 연장하도록 설계한 건 합리적인 구조야. 문제는 그 기간 안에 민간 수요를 만들어 내느냐인데, 이건 정책이 아니라 회사의 몫이야.

진짜 관문은 소프트웨어야

이번 조치로 판로는 열렸는데, 판로가 열렸다고 제품이 팔리는 건 아니야. 남은 벽은 소프트웨어야.

AI 워크로드를 GPU에서 NPU로 옮기려면 모델을 컴파일하고, 커널을 최적화하고, 서빙 스택을 맞춰야 해.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이 작업을 다시 해야 하고, 요즘은 모델이 몇 주 간격으로 나와. 칩 회사가 이 속도를 따라가려면 상당한 소프트웨어 인력이 필요해.

국산 NPU 진영이 최근 몇 년간 소프트웨어에 투자해 온 건 사실이야. 파이토치 백엔드 지원, 주요 오픈웨이트 모델 사전 최적화, 컴파일러 툴체인 공개 같은 작업이 진행돼 왔어. 다만 CUDA가 십수 년에 걸쳐 쌓은 문서, 예제, 커뮤니티 답변의 총량과 비교하면 아직 차이가 커. 이건 자금으로 단번에 메우기 어려운 종류의 격차야.

공공기관 입장에서도 이건 실질적인 도입 장벽이야. 수의계약으로 칩을 사는 건 쉬워졌는데, 그 칩 위에서 돌릴 모델과 운영 인력은 별도 문제야. 그래서 이번 지정이 실제 매출로 연결되려면 칩만이 아니라 "돌아가는 시스템"을 통째로 납품하는 형태가 필요해. 리벨리온이 카드와 서버를 함께 지정받은 것도 이 맥락으로 읽혀.

경쟁 상대는 여전히 엔비디아야. 공공 조달에서 수의계약 경로가 열려도, 기관이 성능과 생태계를 이유로 GPU를 고르면 그만이야. 혁신제품 지정은 국산 제품을 선택지에 올려놓는 장치이지, 선택을 강제하는 장치가 아니거든.

국내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역할도 변수야. 네이버클라우드나 KT클라우드 같은 곳이 국산 NPU 기반 인스턴스를 제공하면, 공공기관이 칩을 직접 사지 않고도 쓸 수 있어. 하드웨어 구매보다 서비스 구독이 도입 장벽이 훨씬 낮아.

해외 진출 관점에서는 국내 공공 레퍼런스가 자산이 돼. 다른 나라 공공 조달에 들어갈 때 "자국 정부가 쓰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강력한 근거야. 딥엑스가 이미 해외 수주를 확보한 상태에서 국내 지정을 받은 건 이 순서를 뒤집은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양쪽 레퍼런스를 다 갖게 돼.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공공기관 AI 인프라 담당자라면 이제 국산 NPU가 실제 선택지야. 수의계약이 가능하고 조달 기간이 짧아졌고 손실 책임도 면제돼. 다만 칩만 사면 안 되고 소프트웨어 지원 범위를 계약서에 명시해 두는 게 좋아.

AI 반도체 스타트업이라면 이 제도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게 중요해. 국가 R&D 과제 수행 이력이 있으면 과기정통부 추천 경로를 밟을 수 있어. 기술 개발과 별개로 제도 트랙을 병행하는 게 사업화 시점을 앞당겨.

투자자라면 이번 지정을 매출 확정으로 읽으면 안 돼. 판로가 열린 것이지 계약이 체결된 게 아니야. 실제로 봐야 할 지표는 지정 이후 6~12개월 사이의 공공 수주 건수와 금액이야.

개발자라면 국산 NPU의 소프트웨어 스택 성숙도를 직접 확인해 볼 만해. 공공 수요가 늘면 이 칩들을 다루는 경험 자체가 시장 가치를 갖게 돼.

연구기관·대학이라면 공공 조달 경로가 열렸다는 건 실험용 하드웨어 확보가 쉬워졌다는 뜻이기도 해. 국산 NPU 위에서 모델을 돌려 본 경험을 가진 인력이 아직 적어서, 지금 시작하면 희소한 축에 들어. 벤더가 제공하는 컴파일러 툴체인과 사전 최적화 모델 목록을 먼저 확인해 보는 게 순서야.

엣지 AI를 다루는 제조 기업이라면 딥엑스 라인이 지정된 게 신호가 될 수 있어. 공공에서 검증된 엣지 추론 모듈은 산업 현장 도입 심사에서 통과하기가 훨씬 쉬워져. CCTV, 검사 장비, 물류 로봇처럼 저전력 추론이 필요한 영역에서 국산 선택지가 생긴 셈이야.

정책을 보는 입장이라면 3년 지정 기간이 지난 뒤가 진짜 평가 시점이야. 그 사이에 민간 시장에서 자립했는지, 아니면 공공 조달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굳었는지가 이 정책의 성패를 가를 거야.

마지막으로 이번 조치의 성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래. 국산 AI 반도체가 기술적으로 준비됐다는 선언이 아니라, 아무도 처음 사 주지 않아서 생기는 교착을 정부가 대신 풀어 주겠다는 결정이야. 첫 고객이 없으면 레퍼런스가 없고, 레퍼런스가 없으면 다음 고객도 없어. 이 고리를 끊는 데 3년이 주어졌고, 그 안에 민간과 해외로 넘어가지 못하면 같은 자리로 돌아오게 돼.

🥄 남은 궁금증 세 가지

— 혁신제품 지정되면 공공기관이 무조건 사야 해? 아니야. 수의계약이 가능해지는 것이지 구매가 의무는 아니야. 기관이 여전히 해외 GPU를 고를 수 있어. 다만 담당자의 손실 책임이 면제되니까 국산을 고를 때의 심리적·행정적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거야.

— 성능은 엔비디아랑 비교하면 어때? 칩마다 다르고 워크로드마다 달라서 한 줄로 답하기 어려워. 다만 이 회사들이 노리는 자리는 학습이 아니라 추론이고, 추론 중에서도 특정 모델과 특정 배치 조건에 최적화한 구간이야. 범용 성능으로 정면 비교하는 건 애초에 이 제품들의 설계 의도가 아니야.

— 이걸로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가 자리 잡을까? 단정하긴 일러. 공공 조달은 초기 레퍼런스를 만들어 주는 장치고, 한국 공공 시장의 절대 규모는 크지 않아. 진짜 시험대는 이 레퍼런스로 민간 데이터센터나 해외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느냐야. 3년 지정 기간이 그 답을 볼 시간표인 셈이야.

참고 자료

수치와 기준은 발표 시점 기준이라 바뀔 수 있어. 투자 판단은 각자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