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안 바뀌는 소프트웨어에 1억 달러가 꽂혔어
기업 소프트웨어 중에 제일 안 바뀌는 게 뭐냐고 물으면, 웬만한 재무 담당자는 망설임 없이 ERP라고 답해. 그중에서도 총계정원장, 그러니까 회사의 모든 돈 흐름이 최종적으로 기록되는 그 장부는 진짜 안 바뀌어. 한번 깔면 10년, 15년을 쓰거든. 바꾸려면 감사인한테 설명해야 하고, 과거 몇 년치 전표를 다 옮겨야 하고, 옮기다 숫자 하나 틀리면 그 해 재무제표가 통째로 흔들려. 그래서 다들 욕하면서도 그냥 써. "지금 쓰는 게 최고라서"가 아니라 "바꾸다 죽을까 봐"에 가까워.
그 시장에 2026년 8월 19일, 릴렛(Rillet)이라는 회사가 시리즈C로 1억 달러를 받았다고 발표했어. 기업가치는 10억 달러. 그러니까 유니콘이 됐다는 얘기야. 라운드를 이끈 건 아이코닉 캐피탈(ICONIQ)이고, 세쿼이아(Sequoia), 안드리센 호로위츠(a16z), 세쿼이아 글로벌 에쿼티스, 베인 캐피털 벤처스, 오크 HC/FT, 배터리 벤처스, 퍼스트마크, 스케일 벤처 파트너스, 크레안둠이 줄줄이 붙었어. 릴렛이 스텔스에서 나온 게 2024년이니까, 세상에 존재를 알린 지 2년 만에 10억 달러 딱지를 붙인 거야.
더 눈에 띄는 건 속도야. 릴렛은 2025년 5월 세쿼이아 주도로 시리즈A 2,500만 달러를 받았고, 딱 10주 뒤인 2025년 8월 6일에 a16z와 아이코닉이 공동으로 이끈 시리즈B 7,000만 달러를 받았어. 그리고 1년 뒤 이번 시리즈C. 회사 발표 기준으로 14개월 안에 세 번의 라운드, 누적 조달 2억 달러 이상이야. 벤처 시장이 아무리 AI에 관대해졌다고 해도, 회계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 속도로 돈을 받는 건 흔한 그림이 아니야.
회사가 이 돈으로 하겠다고 내건 목표는 "회계 초지능(accounting superintelligence)"이라는 좀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어. 풀어 쓰면 이래.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총계정원장 위에 AI 에이전트를 올려서, 사람이 승인 버튼을 누르고 감사 추적이 남는 구조 안에서, 지금까지 회계팀이 손으로 하던 일을 기계가 하게 만들겠다는 거야. 목적지는 월말 결산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는 것. 세쿼이아가 시리즈A 때 쓴 표현을 빌리면 "제로데이 클로즈(zero-day close)", 즉 마감일에 마감하는 게 아니라 이미 마감돼 있는 상태로 사는 거지.
등장인물 넷 — 장부를 다시 짓는 쪽, 돈을 대는 쪽, 지켜야 하는 쪽
먼저 릴렛. 공동창업자 겸 CEO는 니콜라스 코프(Nicolas Kopp)야. 독일 챌린저 뱅크 N26의 미국 법인 CEO를 하던 사람이고, 공동창업자 스텔리오스 모데스(Stelios Modes)는 N26의 결제 인프라를 설계한 엔지니어야. 둘 다 핀테크를 만들던 사람이지 회계 소프트웨어 업계 출신이 아니야. 그런데 바로 그게 창업 동기였어. 코프가 시리즈B 발표 때 한 말이 이거였거든. "간단한 요청 하나가 몇 주씩 걸렸다. 시스템이 과거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을 키우면서 자기가 직접 겪은 고통을 제품으로 만든 케이스야.
돈을 댄 쪽은 세 겹으로 쌓여 있어. 맨 처음 들어온 건 세쿼이아야. 2025년 5월 시리즈A 2,500만 달러를 이끌면서 공식 포스트에 이렇게 썼어. 지난 10년간 핀테크가 ERP 스택을 조각조각 분해했는데, 정작 한가운데 있는 총계정원장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회사가 마주하는 선택지를 "제약이 뻔한 소형 도구를 계속 쓰거나, 열 명 넘는 전문가가 붙어야 돌아가는 난해한 레거시로 갈아타거나"라는 이지선다로 묘사했어. 그리고 후자로 가면 장부 닫는 데 매달 15~20일이 걸린다고 했지.
두 번째 겹은 a16z와 아이코닉이야. 2025년 8월 시리즈B를 공동으로 이끌면서 a16z의 알렉스 램펠(Alex Rampell)과 아이코닉의 세스 피어폰트(Seth Pierrepont)가 릴렛 이사회에 들어갔어. a16z는 공식 포스트에서 시장 규모를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와 서비스, 그리고 사람이 손으로 하던 노동까지 합쳐 5,000억 달러로 잡았고, 기존 시스템을 "부서지기 쉽고, 투박하고, 지독하게 수작업"이라고 깠어. 압권은 이 문장이야. "회사의 재무 신경계가 왜 아직도 윈도우 95 시절에 만들어진 소프트웨어 위에서 돌아가고 있나?"
세 번째 겹이 이번 시리즈C를 이끈 아이코닉이야. 이미 시리즈B에 들어와 있던 곳이 리드를 다시 잡았다는 건, 안에서 숫자를 본 투자자가 더 크게 걸었다는 뜻이야. 아이코닉의 피어폰트는 이번에 릴렛을 "AI 네이티브 회계 인프라 분야의 명백한 시장 선두"라고 표현하면서, 자기가 인상 깊게 본 건 제품 데모가 아니라 고객의 운영 방식이라고 했어. 수십억 달러 규모 사업을 전통적인 회계팀의 10분의 1 인력으로 돌리면서 장부를 계속 닫힌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이 판에서 지켜야 하는 쪽이 있어. 오라클 넷스위트(NetSuite)와 세이지 인탯트(Sage Intacct)야. 넷스위트는 1998년에 창업해 2007년 상장하고 2016년 오라클에 93억 달러에 인수된, 클라우드 ERP의 원조 격이야. 업계 집계 기준으로 200개 넘는 국가에서 4만 곳 이상이 쓴다고 알려져 있어. 세이지 인탯트도 1999년 창업해 2017년 세이지에 8억 5,000만 달러에 팔렸고, 지금 고객사가 1만 곳 이상으로 집계돼. 두 회사가 중견기업 회계 시장을 20년 가까이 나눠 먹은 구도인데, 릴렛의 고객 600곳은 이 숫자 앞에서 아직 반올림 오차 수준이야. 이 격차를 어떻게 볼 거냐가 이 뉴스의 진짜 쟁점이야.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 14개월에 세 번, 고객은 3배
숫자부터 정리하고 갈게. 릴렛이 공식 발표에서 밝힌 이번 라운드의 핵심은 네 가지야. 시리즈C 1억 달러, 기업가치 10억 달러, 누적 조달 2억 달러 이상, 그리고 14개월 만의 세 번째 라운드. 사업 지표로는 고객사 600곳 돌파, 최근 3개월간 신규 ARR 2배 증가를 내놨어. 고객 이름으로는 머코어(Mercor), 펑션 헬스(Function Health), 템포럴(Temporal)이 공개됐고, 시리즈B 때는 연 매출 1억 달러가 넘는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가 3일 만에 결산한다는 사례와, 재무 인력 두 명으로 돌아가는 윈드서프(Windsurf) 사례를 들었어.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게 있어. 회사가 공개한 건 "신규 ARR이 3개월간 2배"지 절대 ARR 수치가 아니야. 기저가 작으면 배수는 쉽게 나와. 릴렛은 시리즈B 때도 "12주 만에 ARR 2배"라고 했고, 그때 고객이 200곳이었어. 즉 이 회사는 계속 성장률만 공개하고 절대값은 안 밝히는 쪽을 택하고 있어. 10억 달러라는 기업가치가 매출 대비 몇 배인지는 외부에서 계산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야. 이건 릴렛만의 문제는 아니고 지금 AI 인프라 라운드 대부분이 그래. 다만 "그래서 싸다/비싸다"를 말할 근거가 없다는 점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라운드 히스토리를 표로 보면 속도가 더 선명해져.
| 라운드 | 발표 시점 | 금액 | 리드 투자자 | 당시 공개된 고객 수 |
|---|---|---|---|---|
| 스텔스 탈출 | 2024년 | 비공개 | — | — |
| 시리즈A | 2025년 5월 28일 | 2,500만 달러 | 세쿼이아 | 비공개 |
| 시리즈B | 2025년 8월 6일 | 7,000만 달러 | a16z + 아이코닉 (공동) | 200곳 이상 |
| 시리즈C | 2026년 8월 19일 | 1억 달러 | 아이코닉 | 600곳 이상 |
제품 쪽에서 릴렛이 내세우는 건 세 가지야. 첫째, 실시간 총계정원장. 월말에 데이터를 긁어모아 스냅샷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세일즈포스나 브렉스 같은 원천 시스템에서 거래가 발생하는 순간 원장에 반영되는 구조야. 둘째, 연속 결산 아키텍처. 마감이 한 달에 한 번 벌어지는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돌아가는 상태라는 개념이야. 셋째, 사람 승인과 감사 추적을 전제로 한 AI 에이전트. 이 세 번째가 핵심인데, 감사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동화는 회계에서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야. 릴렛은 도입 기간도 무기로 내걸어. 레거시 ERP가 12개월 걸리는 구축을 4주에 끝낸다는 주장이야. 이건 회사 측 주장이고 독립적으로 검증된 수치는 아니야.
유통 채널도 조용히 깔렸어. 릴렛은 2026년 4월 EY와 얼라이언스를 맺었고, 회계 전문지 어카운팅 투데이가 꼽는 상위 20개 회계법인 중 절반 이상과 공식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고 밝혔어. ERP는 소프트웨어를 파는 게임이 아니라 구현 파트너를 확보하는 게임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 대목이 라운드 금액보다 중요할 수도 있어. 넷스위트가 20년간 못 뚫린 이유의 절반은 제품이 아니라 그 주변에 쌓인 컨설턴트 생태계였거든.
각자 뭘 얻나 — 그리고 뭘 걸었나
릴렛이 얻는 건 명확해. 시간이야. ERP 교체는 고객이 결정하는 데만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상품이고, 그 사이 회사는 영업 인력과 구현 인력을 미리 태워야 해. 1억 달러는 그 시차를 버틸 연료야. 그리고 10억 달러 유니콘이라는 라벨 자체가 영업 자산이 돼. CFO가 회사의 장부를 맡길 벤더를 고를 때 제일 무서워하는 건 "이 회사가 3년 뒤에도 있나"거든. 유니콘 딱지와 2억 달러 잔고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역할을 해. 회계 소프트웨어에서 자본은 성능이 아니라 신뢰의 대용품이야.
아이코닉이 얻는 건 포지션이야. 시리즈B에 들어와서 시리즈C 리드를 다시 잡았다는 건 지분을 평균 단가 낮은 구간에 쌓았다는 뜻이고, 이사회 자리도 이미 확보돼 있어. 세쿼이아와 a16z는 시리즈A와 B에서 각각 먼저 들어왔으니 이번 라운드는 지분 희석을 막는 프로 라타 성격이 커. 세 곳 모두 이 시장을 "AI가 실제로 인건비를 대체하는 몇 안 되는 B2B 카테고리"로 보고 있어. a16z가 잡은 5,000억 달러 시장 규모에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뿐 아니라 사람이 하던 노동까지 포함한 것 자체가 그 논리를 드러내.
고객, 그러니까 재무팀이 얻는 건 인원이야. 미국 회계 인력 시장은 몇 년째 공급이 모자라. 자격을 갖춘 회계사를 뽑기 어렵고, 뽑아도 결산 기간에 갈려 나가서 퇴사해. 그래서 CFO 입장에서 "결산 인력을 3명에서 1명으로 줄인다"는 제안은 비용 절감이 아니라 채용 문제의 해결책으로 들려. 아이코닉이 언급한 "전통적 규모의 10분의 1 재무팀"이 정확히 이 얘기야. 다만 여기엔 반대급부가 있어. 사람이 줄면 AI가 만든 분개를 검토할 눈도 줄어든다는 것. 이 트레이드오프를 감사인이 어떻게 볼지는 아직 정리가 안 됐어.
브렉스와 램프 같은 핀테크도 간접적으로 이득을 봐. 브렉스는 2026년 1월 AI 네이티브 회계 API를 공개하면서 첫 파트너로 릴렛과 캠프파이어(Campfire)를 잡았어. 배치 처리 대신 실시간 웹훅으로 ERP와 양방향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구조인데, 브렉스 입장에서는 자기 거래 데이터가 장부에 바로 꽂히는 통로가 생기는 거야. 이런 회사들에게 AI 네이티브 ERP는 경쟁자가 아니라 자기 데이터의 출구야. 레거시 ERP가 API를 열어주는 속도가 느릴수록 이 동맹은 더 단단해져.
반대로 잃을 게 있는 쪽도 정리해 두자. 넷스위트와 인탯트를 구축해 온 컨설팅 파트너들이야. 이 생태계는 "구축이 어렵다"는 사실 자체로 먹고살았어. 도입이 4주로 줄면 12개월치 구현 매출이 사라져. 릴렛이 EY를 비롯한 대형 회계법인과 손잡은 건 이 저항선을 정면으로 뚫는 대신 우회한 선택으로 볼 수 있어. 파트너를 적으로 두지 않고 미리 자기편으로 끌어오는 거지.
예전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어 — 하나는 성공, 하나는 조용히 사라졌어
성공 사례부터 보면, 사실 지금 방어하는 쪽인 넷스위트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도전자였어. 1998년에 창업해서 "서버 사는 대신 브라우저로 회계하자"고 했을 때, 당시 ERP 시장을 쥐고 있던 SAP와 오라클 온프레미스 진영은 그걸 장난감 취급했어. 넷스위트가 상장한 게 2007년, 그러니까 창업 9년 만이었고, 오라클이 93억 달러에 사 간 게 2016년으로 18년 만이야. 클라우드가 옳았다는 게 증명되는 데 20년 가까이 걸린 거야. 세이지 인탯트도 비슷해. 1999년 창업, 2017년 세이지에 8억 5,000만 달러 매각. 두 회사 다 결국 이겼지만, 이겼다는 걸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이 벤처 펀드의 수명보다 길었어.
실패 사례는 케넌디(Kenandy)야. 2010년에 실리콘밸리의 전설급 창업자 샌드라 커치그가 세운 클라우드 ERP 회사인데, 커치그는 1970년대에 ASK 컴퓨터 시스템스를 만들어 제조업 MRP 소프트웨어를 개척한 사람이야. 이력만 보면 못 이길 이유가 없었어. 클라이너 퍼킨스가 첫 라운드를 이끌었고 세일즈포스도 들어왔어. 누적 5,000만 달러 이상을 조달했고 한때 기업가치가 3억 5,000만 달러까지 갔어. 그런데 결말은 2018년 1월, 같은 세일즈포스 플랫폼 위에서 경쟁하던 루트스톡(Rootstock)에 인수되는 거였어.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고, 업계는 이걸 승리가 아니라 정리로 읽었어.
케넌디가 왜 안 됐냐를 보면 이번 건을 볼 때 뭘 확인해야 하는지가 나와. 제품이 나쁘지 않았고 창업자도 최고였는데, ERP는 "더 나은 제품"으로 이기는 시장이 아니었어. 이기려면 구현 파트너 네트워크, 산업별 회계 규정 대응, 감사인이 익숙한 리포트 포맷,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이 기존 시스템을 버릴 만큼의 고통이 필요했어. 2010년대 중반에 넷스위트를 쓰던 회사는 불편하긴 해도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았거든. 그래서 안 바꿨어. 케넌디는 "지금 바꿔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했어.
그럼 릴렛은 다르냐. 다를 수 있는 지점이 몇 개 있어. 첫째, 이번엔 고통의 성격이 바뀌었어. 예전엔 "UI가 구려서 불편"이었는데 지금은 "결산에 사람 열 명이 필요한데 그 열 명을 못 뽑는다"야. 둘째, 마이그레이션 비용 자체가 내려갔어. 계정 체계 매핑이나 과거 전표 이관처럼 전에는 컨설턴트가 몇 달 붙던 일을 모델이 상당 부분 처리해. 셋째, 원천 데이터가 이미 API로 흘러다녀. 세일즈포스, 스트라이프, 브렉스, 램프가 다 열려 있어서 통합 비용이 예전 같지 않아. 넷째, 초고속으로 크는 AI 회사들이 레거시 도입에 12개월을 쓸 여유가 없어서 신생 벤더를 먼저 택하는 구조가 생겼어. 다만 이 네 가지가 다 맞아도, 넷스위트의 4만 고객 중 몇 퍼센트가 실제로 움직이느냐는 여전히 미지수야. 600곳은 아직 증거가 아니라 가설이야.
경쟁자들은 어떻게 받아치나
가장 직접적인 대응은 오라클에서 나왔어. 넷스위트는 2025년 10월 슈트월드(SuiteWorld)에서 넷스위트 넥스트(NetSuite Next)와 오토노머스 클로즈(Autonomous Close)를 공개했어. 이름부터 릴렛이 파는 것과 같은 말이야. 기간 말에 몰아서 하는 대신 거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를 잡아내고, 임차료나 감가상각처럼 정해진 분개는 자동으로 올리고, 은행과 매출채권·매입채무 대사를 자동 매칭하는 구조야. 오라클은 자체 테스트에서 정형 거래의 최대 98%를 자동 처리했다고 밝혔는데, 이건 벤더 자체 수치라 그대로 받아들이긴 일러. 프리뷰가 2025년 말 일부 고객에게 나갔고 전면 배포는 2026년에서 2027년으로 잡혀 있어.
세이지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어. 세이지 인탯트 2026 릴리스1이 2026년 2월 13일에 나오면서 재무 인텔리전스 에이전트와 임포트 에이전트가 들어갔고, 2026년 4월에는 재무·인사·운영 전반에 AI 에이전트를 확장한다고 공식 발표했어. 세이지 코파일럿이라는 자연어 인터페이스를 앞단에 두고 클로즈·AP·타임·어슈어런스 에이전트를 뒤에 붙이는 구조야. 넷스위트든 세이지든 논리는 같아. "AI 회계가 필요하면 장부를 옮기지 말고 우리 장부 위에서 켜라." 교체 비용이 극단적으로 높은 시장에서 이건 꽤 센 카드야.
같은 세대의 스타트업 경쟁도 만만치 않아. 캠프파이어는 2025년 7월 액셀 주도로 시리즈A 3,500만 달러를 받고 12주 만인 2025년 10월 15일에 액셀과 리빗이 공동으로 이끈 시리즈B 6,500만 달러를 받아 누적 1억 달러를 넘겼어. 자체 개발한 회계 특화 모델이 대사와 변동 분석 같은 핵심 업무에서 95% 정확도를 낸다고 주장하고, 포스트호그·데카곤·리플릿을 고객으로 들고 있어. 릴렛과 캠프파이어는 브렉스 회계 API의 첫 파트너로 나란히 이름을 올렸을 만큼 같은 자리에서 싸우고 있어.
옆에서 파고드는 진영도 있어. 뉴메릭(Numeric)은 결산 관리에서 출발해 2025년 11월 IVP 주도로 시리즈B 5,100만 달러를 받으며 누적 8,900만 달러를 모았고, 종합 재무 플랫폼으로 범위를 넓히는 중이야. 전략이 릴렛과 정반대야. 릴렛은 장부를 통째로 갈아엎자고 하고, 뉴메릭은 기존 넷스위트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결산 자동화를 얹자고 해. 고객 입장에서 위험이 훨씬 작은 제안이라 초기 채택 장벽이 낮아. 대신 원장을 소유하지 못하니까 나중에 가치 사슬에서 밀려날 위험을 안고 있어.
램프와 브렉스, 머큐리 같은 핀테크는 또 다른 각도로 접근해. 램프는 2026년 6월 3일 회계법인용 AI 운영체제 램프 스택(Ramp Stack)을 내놨어. 약 1,500억 달러 규모로 잡히는 회계법인 시장을 겨냥해서, 고정자산 감가상각이나 선급비용 상각, 이연매출 스케줄을 AI가 만들고 매 기간 분개까지 올리는 구조야. 첫 연동 대상이 퀵북스고 넷스위트와 세이지 인탯트도 예정돼 있어. 즉 램프는 원장을 만들지 않고 원장 위에서 일하는 사람을 대체하려 해. 브렉스는 2026년 1월 회계 API로 AI 네이티브 ERP와 손을 잡는 쪽을 택했고, 머큐리는 은행·재무 계층에 머물면서 데이터 공급자 위치를 지키고 있어. 정리하면 이 시장은 지금 네 갈래로 갈라져 있어. 원장을 교체하는 쪽(릴렛·캠프파이어), 원장 위에 얹는 쪽(뉴메릭), 원장을 지키며 AI를 켜는 쪽(넷스위트·세이지), 그리고 원장 바깥에서 데이터를 쥔 쪽(램프·브렉스·머큐리).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재무·회계 실무자한테 이건 제일 직접적이야. 앞으로 2년 안에 ERP 벤더 선정 자리에 앉게 되면, 후보 목록이 "넷스위트냐 인탯트냐"에서 "넷스위트냐 인탯트냐 릴렛이냐 캠프파이어냐"로 늘어날 가능성이 커. 이때 체크해야 할 건 데모의 화려함이 아니야. 다중 법인 연결, 수익 인식 기준 대응, 감사인이 요구하는 형식의 증빙 추출, 그리고 AI가 자동 생성한 분개의 승인·되돌리기 흐름이야. 특히 마지막 항목은 반드시 실제 감사인에게 미리 보여주고 답을 받아 두는 게 좋아. AI가 만든 전표의 책임 소재는 업계 표준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영역이거든.
개발자, 특히 사내 재무 시스템을 붙이는 쪽에는 통합 방식의 변화가 와. 지금까지 ERP 연동은 야간 배치와 CSV 업로드의 세계였어. 브렉스가 실시간 웹훅 기반 양방향 API를 열고 릴렛·캠프파이어가 그걸 첫 파트너로 받은 건, 이 계층이 배치에서 이벤트 스트림으로 넘어간다는 신호야. 회계 데이터를 다루는 파이프라인을 새로 설계한다면 "월말에 몰아서 동기화"라는 전제를 빼고 시작하는 게 안전해. 다만 실시간 원장은 실시간 오류도 뜻해. 잘못된 이벤트가 즉시 장부에 반영되는 구조에서는 멱등성과 정정 전표 설계가 훨씬 중요해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번 라운드가 시험이야. 확인할 지표는 세 가지라고 봐. 첫째, 상장사나 매출 5억 달러 이상 고객이 몇 곳인지. 릴렛은 상장 기업 고객이 있다고 했지만 숫자는 안 밝혔어. 중견 이상으로 올라가야 넷스위트를 실제로 대체하는 거야. 둘째, 총 ARR 절대 수치. 성장률만 계속 공개된다면 10억 달러 밸류를 검증할 방법이 없어. 셋째, 넷스위트 오토노머스 클로즈가 전면 배포되는 2026~2027년 이후의 이탈률. 오라클이 같은 기능을 기존 계약에 얹어 사실상 무료로 뿌리면 릴렛의 차별점이 얼마나 남는지가 그때 드러나. 지금 시점에서 승부가 났다고 말하는 건 확실히 일러.
일반 사용자, 그러니까 회계와 직접 상관없는 직장인한테도 간접적인 영향은 있어. 회계는 지금까지 "AI가 못 건드릴 안전한 전문직"으로 분류되던 영역이었어. 규제가 있고, 책임 소재가 명확해야 하고, 틀리면 법적 문제가 되니까. 그런데 감사 추적과 사람 승인을 붙이는 방식으로 그 벽을 넘으려는 시도가 자본을 이만큼 끌어모으고 있다는 건, 같은 논리가 다른 규제 직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야. 실제로 결과가 나올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방향은 분명해.
🥄 남은 궁금증 세 가지
— 그래서 나랑 무슨 상관이야? 회계팀이 아니면 당장은 상관없어. 다만 회사에서 경비 정산이나 매출 인식 절차를 만지는 일을 한다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월말에 몰아서"라는 전제가 사라진 시스템을 쓰게 될 가능성이 있어. 그때 바뀌는 건 도구가 아니라 일하는 리듬이야.
— 이게 왜 하필 지금이야? ERP는 원래 안 바뀌는 시장인데, 지금 세 가지가 겹쳤어. 회계 인력 공급 부족, 마이그레이션 비용을 깎아준 AI, 그리고 원천 데이터를 이미 API로 뿌리는 핀테크 스택. 케넌디가 2010년대에 실패한 이유가 "지금 바꿔야 할 이유"의 부재였다면, 그 이유가 이번엔 생겼다는 게 투자자들의 베팅이야. 맞았는지는 아직 몰라.
— 넷스위트를 진짜 이긴 거야? 아니, 아직 아니야. 릴렛 고객이 600곳이고 넷스위트는 4만 곳 이상으로 집계돼. 100분의 1 수준이야. 게다가 오라클은 오토노머스 클로즈로 같은 기능을 자기 원장 위에서 켜라고 제안하고 있어. 릴렛이 이긴다면 그건 기능 우위가 아니라 "이미 AI로 돌아가는 회사들이 처음부터 릴렛을 고르는" 신규 유입에서 나올 텐데, 그 흐름이 상장사 규모까지 올라갈지는 단정하긴 일러.
참고 자료
- Rillet 공식 블로그 — 시리즈C 1억 달러, 기업가치 10억 달러 (2026-08-19)
- TechCrunch — Rillet raises 100M Series C at 1B valuation, 2 years after emerging from stealth (2026-08-19)
- Rillet 공식 블로그 — 시리즈B 7천만 달러, a16z와 아이코닉 공동 주도 (2025-08-06)
- Andreessen Horowitz — Investing in Rillet (2025-08-06)
- Sequoia Capital — Partnering with Rillet, The Financial ERP for the AI Age (2025-05-28)
- TechCrunch — Rillet raises 25M from Sequoia to automate general ledger systems using AI (2025-05-28)
- Brex 뉴스룸 — Brex Brings AI-Native Accounting Automation to ERPs (2026-01-21)
- PR Newswire — Ramp Launches Stack, an AI Operating System for Accounting Firms (2026-06-03)
- Sage 뉴스룸 — Sage expands AI agents across finance, HR and operations (2026-04)
- PR Newswire — Campfire Raises 65 Million Series B (2025-10-15)
- PR Newswire — Numeric Raises 51M Series B (2025-11)
- Rootstock Software — Rootstock Software Acquires Cloud ERP Software Developer Kenandy Inc. (2018-01-11)
숫자와 기준은 발표 시점 기준이라 바뀔 수 있어. 투자 판단은 각자의 몫!

